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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와 유흥의 공간 동천
환선정 아래 동천에서 뱃놀이하고 술 마시고 시를 읊조린 일들과 관련한 내용이다. 놀잇배에 해당하는 화선(畫船)은 이미 순천부사 이수광(李睟光)의 연작시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뱃놀이의 경우는 대개 관료집단에서 이루어졌는데 술과 기생을 대동해 유흥을 즐긴 경우, 혼자 또는 여럿이 산수를 만끽하며 선유(船遊)의 흥취를 즐긴 경우, 환선정에서 취흥을 즐긴 경우, 환선정 아래 동천에 띄운 ‘화선’을 읊은 경우가 있다.
1872년 순천부 지도 읍성 부분에서 보듯, 환선정 앞 동천에는 호수 형상의 물길이 형성되어 있다. 전술했듯이 이 호수는 환선정을 5차 중수(1790)를 한 윤광안(尹光顏)은 기문에서 “고리모양의 지당(池塘)”이라 하였고, 1914년 김윤식(金允植)은 “배도 띄울 수 있고 헤엄도 칠 수 있어서 늘 양반들과 남녀가 노니는 장소가 되어 소서호(小西湖)라고 일컬어졌다.”라고 하였다. 또한 이곳의 풍광에 대해 조영묵(趙泳默)은 “십리의 연꽃 단청한 처마에 비쳐, 전당의 절경 이 속에도 있네.[十里菡華暎畵簷, 錢塘形勝此中兼.]”라고 하였는데, 전당(錢塘)은 항주(杭州)의 별칭이다. 즉 자연경관이 뛰어난 중국 절강성 항주에 있는 서호(西湖), 또는 전당호(錢塘湖)에 견주어 서소호(小西湖)라고 불리던 환선정 앞 호수 형상의 동천은, 관료나 양반이 기녀를 대동해 술을 마시며 뱃놀이를 즐기거나 혼자 혹은 여럿이 선유의 흥취를 즐길 수 있었던 장소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사람들 기녀를 사이해 이야기하고 人隔桃花語
배는 버들 그림자 따라 이동하네 舟從柳影移
유흥에 빠져 저무는 줄도 모르더니 留連不覺暝
다시 달 밝을 때를 기다리네 更待月明時
이는 이수광의 「제화선팔수題畫船八首」 중 6번째 시로, 선유에 사용된 놀잇배의 하나인 화선(畫船)을 읊은 것이다. 도하(桃花)는 여자의 용모를 형용한 말인데, 여기서는 곱게 화장한 기녀를 가리킨다. 류련(留連)은 술에 빠져 희락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소식(蘇軾)이 「려산驪山」에서 “유흥으로 나라를 망함이 많고, 안일의 독은 사치와 미혹에서 나오네.[由來留連多喪國, 宴安酖毒因奢惑.]”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화선은 기녀를 대동해 선유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태우고 동천 가 수양버들의 그늘을 따라 이동하고, 화선의 유객은 주색의 유흥에 빠져 날 저물도록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낮의 흥을 달밤으로 옮겨 지속하고자 한다. 이처럼 화선을 소재로 한 「제화선팔수」의 내용은 화선 그 자체를 읊은 것이 아니라, 화선을 타고 선유하는 모습들을 담아 놓았다.
붉은 화장 푸른 눈썹의 미인을 배에 태우니 紅粧翠黛載樓船
새로 정사 펴는 부사의 어짊을 알겠네 新政應知太守賢
영녀는 노래부채 아래서 퉁소를 불었고 嬴女奏簫歌扇底
풍이는 춤사위 앞에서 북을 쳤었지 馮夷擊皷舞衣前
강물고기 물결 일으켜 상아돛배 가고 江魚吹浪牙檣動
모래톱 놀란 물새 떼 비단닻줄 끄네 沙鳥驚群錦纜牽
삼신산이 어딘지 모른다 말하지 말게 莫道三山迷處所
환선정 위에 신선들 모였으니 喚仙亭上會神仙
순천부사심통원( 沈通源)이 1544년 환선정 준공 후, 전라도관찰사 규암 송인수와 옥과현감 하서 김인후를 초빙해 선유하고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위 시는 당시 송인수가 「환선정」 제목으로 읊은 2수 중 하나이다. 이를 김인후・심수경・노수신 등이 차운함으로써 환선정 제영시 창작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수련은 곱게 화장하고 단장한 기녀와 악공을 누선에 태우고 선유하는 모습은 앞서 말한 선유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이 당시보다 후대이긴 하나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이 그린 주유청강(舟遊淸江)을 보는 듯하다.
함련의 영녀(嬴女)는 진(秦) 목공(穆公)의 딸 능옥(弄玉)이다. 농옥은 퉁소를 잘 부는 소사(簫史)에게 시집가서 퉁소를 배운 지 몇 년 만에 봉황의 울음소리를 잘 내어 봉황이 찾아오기도 했으며, 수년 뒤 부부가 봉황을 따라 날아갔다고 한다. 풍이(馮夷)는 수신(水神)의 이름이다. 이는 당(唐) 두보가 「옥대관玉臺觀」 함련에서 “마침내 풍이가 와서 북을 치니, 영녀가 퉁소 잘 부는 줄을 비로소 알았네.[遂有馮夷來擊鼓, 始知嬴女善吹簫.]”라고 한 것을 차용한 것이다.
두보는 「옥대관」 미련에서 “홍안에 날개 돋아 하늘 오르는 신선을 어찌 바라겠나, 흰머리 어부나 나무꾼으로 늙음이 마땅하다.[更肯紅顔生羽翼, 便應黃髮老漁樵.]”라고 하였다. 이와 반대로 송인수는 함께 선유하며 유락(遊樂)하는 이들을 신선에 빗대고 풍광 좋은 환선정을 신선이 사는 삼신산에 견주며, 선계에서 노니는 흥취를 표출한다.
한 줄기 맑은 시내에 놀잇배 띄우고 一帶淸川泛畫船
현인들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네 座中談笑會群賢
청산은 난간 밖에 그림자 드리우고 靑山影落朱欄外
백조는 놀잇배 닻줄 앞에서 빙빙나네 白鳥飛廻錦纜前
읊는 곁에서 기이한 흥치를 주체하지 못해 不耐吟邊奇興發
취중에 젊은 기녀에게 끌린들 어떠리 何妨醉裏小娥牽
봉래산 방장산은 다 허언일 뿐이고 蓬萊方丈皆虛耳
내가 지상에서 노니는 신선이로다 我是遨遊地上仙
이는 유영순(柳永詢,1552-1630)의 시다. 그의 자는 순진(詢之), 호는 졸암(拙庵)・북천(北川), 본관은 전주이며, 1610년 윤3월부터 1611년 8월까지 순천부사를 지냈다.
수련은 유영순이 지인들과 함께 맑은 동천에 놀잇배를 띄우고 담소하는 모습을 그렸다. 함련은 환선정 난간 밖 동천의 수면 위로 청산이 비치는 모습과 놀잇배 앞에서 날아도는 백구(白鷗)를 표현하였다. 미련에서는 선유에 빠질 수 없는 술과 기생을 대동해 시를 읊조리며 거리낌 없이 노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이처럼 승경 감상과 유희와 쾌락의 극치를 만끽한 유영순은 경련에서 삼신산은 빈말일 뿐 자신이 바로 지상의 신선이라 함으로써, 선유 흥취의 정점을 찍는다. 이상 2편의 시에서 보듯, 기녀와 술을 대동한 선유의 경우는 질탕한 유흥과 아울러 선계를 노니는 듯한 흥취를 표출하고 있다.
오전엔 관아 오후엔 정자 저녁엔 배를 타니 朝衙午閣暮登船
한가함이 독현을 깨달아서라고 누가 말하나 誰道吾閑覺獨賢
짙은 안개 나는 새 위를 아득히 덮었고 霧帳逈臨飛鳥上
단청한 정자 앞에서 목련 노를 가벼이 흔드네 蘭橈輕拂畫欄前
시정은 이미 석양에 이끌렸고 詩情已被斜陽引
주흥은 다시 흰 달에 끌렸어라 酒興還爲皓月牽
이때 외로운 학 동쪽에서 와 지나가니 孤鶴東來此時過
이 몸이 후대의 蘇仙인 듯하네 却疑身是後蘇仙
이 시는 김지남(金止男, 1559-1631)의 「차환선정운」이다. 그는 1623년 10월부터 1624년 5월까지 순천부사를 역임하였다. 오전에는 정무를 보고 오후에는 환선정을 소요하고 저녁에는 동천에서 선유하는 자신의 한가함은 獨賢을 깨달은 데서 나온 것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다. 『시경』 소아(小雅) 「북산北山」에 “너른 하늘 아래가 왕의 땅 아닌 곳 없으며, 땅을 따르는 경내도 왕의 신하 아님이 없는데, 대부가 공평하지 못한지라 나만 종사하게 해 홀로 어질다 하노라.[溥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大夫不均, 我從事獨賢.]”라고 하였는데, 이는 왕이 많은 신하들 중에 유독 나만 종사하게 해 수고롭게 함을 노래한 것이다. 즉 김지남은 정무가 많으므로 휴식이 필요함을 에둘러 말하며, 읍성과 가까운 환선정과 동천을 유식지소(遊息之所)로 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홀로 목란주를 타고서 안개 낀 동천이나 석양 또는 달을 감상하며 시정(詩情)과 주흥(酒興)을 만끽하는 자신을 후대의 소선(蘇仙)이라 표현하였다. 소선은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즉 김지남은 소식이 임술년(1082) 음력 7월 16일 적벽에서 달밤 선유를 기록한 「전적벽부前赤壁賦」의 고사를 차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김지남의 선유는 소식의 적벽선유 재연으로 볼 수 있다.
민가 옹기종기 들어차 앞 처마에 붙어 閭閻撲地襯前簷
여염집과 신선집의 기상 둘 다 갖추었네 村舍仙居氣象兼
물 얕고 바람 없어도 놀잇배 움직이고 淺水無風搖畵艇
먼 산 기운 비처럼 끼어 주렴에 방울지네 遠嵐如雨滴湘簾
공무는 봄이 와도 적어진 것 알았고 簿書政覺春來少
호방한 흥취는 취한 뒤 더함을 알겠네 豪興方知醉後添
노쇠해 시의 힘도 감퇴함을 탄식하니 自嘆我衰詩力退
포장하려 해도 붓끝 뾰족함 얻기 어렵네 鋪張難得筆頭尖
예리한 표현을 지어낼 수 없다
이는 박경신(朴慶新,1560-1626)의 환선정 차운시 2수 중 첫수이다. 그의 자는 중길(仲吉), 호는 한천(寒泉)・삼곡(三谷), 본관은 죽산(竹山, 현 안성)이다. 『광해군일기』 1614년 10월 9일자 기사의 “광주목사 박경신을 표창하라.”는 내용과 1616년 1월 20일자 기사의 “도총관에 제수한다.”는 내용을 의거하면, 박경신의 광주목사 재임기간은 1614년 10월 9일 이전부터 1616년 1월 20일이다. 따라서 위 시는 환선정 2차 중수(1613) 직후 지은 것이다.
봄이라 민간에는 춘경으로 바쁘겠으나 공무가 한산한 박경신은 바람이 불지 않아 산기운이 꽉 낀 날 수심 얕은 동천에 놀잇배를 띄우고 술을 마셨다. 그러다 문득 시를 지어 호방한 흥취를 남기고 싶었으나, 몸이 노쇠한 만큼 자신의 문장력 또한 감퇴하여 예리한 표현을 구사하지 못함을 탄식한다. 다시 말해 선유와 취흥 속에서 자아성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뿌연 술을 큰 술잔에 담고서 浮浮綠蟻貯觥船
좋은 일로 봄에 뭇 현인들 모았네 好事春來集衆賢
화려한 관사 맑은 거울 속에 막 열렸고 華館初開明鏡裏
지는 꽃 앞에서 거문고를 다시 연주하네 瑤琴更奏落花前
달빛 눈에 가득한데 하필 신선 부르랴 姮娥滿眼何須喚
물결을 따라가니 비단 닻줄 끌 데 없네 錦纜隨波不用牽
지방관으로 잠시 명승지에 머물건만 鳧舃暫淹名勝地
세상 사람들 중 귀양 온 신선을 뉘 알리 世人誰識謫來仙
이는 정양필(鄭良弼,1593-1661)의 시다. 그의 자는 몽뢰(夢賚), 호는 추천(秋川),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1639년부터 1641년까지 순천부사를 역임하였다.
원문의 녹의(綠蟻)는 술 표면에 떠오르는 녹색 거품으로, 술을 가리킨다. 굉선(觥船)은 용량이 큰 술잔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석(鳧舃)은 후한(後漢) 때 하동 사람 왕교(王喬)가 섭현(葉縣) 현령이 되어 도성에 갈 적에 신술을 부려 두 마리 오리로 신을 삼아 타고 가서 조회한 데서 나온 말로, 지방관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순천부사를 가리킨다.
정양필은 봄에 술을 가득 준비해 배에 싣고서 거울처럼 맑은 동천 앞에 화려하게 단청한 환선정으로 현인들을 불러 모아 음악을 연주하며 풍류를 즐겼다. 그러다 항아(姮娥), 즉 달빛 가득한 밤이 되자 물결을 따라 뱃놀이 하며 달을 감상하던 그는 자신을 명승 순천에 지방관으로 와 잠시 머무는 적선(謫仙)이라 표현한다. 당대(唐代) 시인 하지장(賀知章,659-744)이 장안에서 이백(李白,701-762)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시에 감탄하여 ‘적선인(謫仙人)’이라 하였는데, 이에 이백이 「對酒憶賀監」 시에서 “장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를 귀양 온 신선이라 불렀네.[長安一相見 呼我謫仙人.]”라고 하였다. 이후 ‘적선’은 이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정양필이 제현들과 취흥이 올라 뱃놀이를 하며 달을 감상하는 자신을 굳이 ‘적선’으로 표현한 것은, 당시 유흥의 상황이 술과 달을 애호한 흥취를 시로 녹여낸 이백과 부합한다고 여겼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므로 정양필의 선유는 적선 이백의 정취를 모방한 유흥으로 볼 수 있다.
저물녘 방주로 가 놀잇배에 오르니 晩向芳洲上彩船
좌중의 빈객은 모두 현인들이네 座中賓客摠群賢
몸은 아득히 무하향 밖에서 노닐고 身遊縹渺無何外
마음은 아득한 태고의 앞에 있네 心在鴻荒太古前
들물은 바다로 흘러 큰 물결 거세고 野水通潮鯨浪急
버들꽃 눈처럼 저녁 바람에 흩날리네 楊花如雪夕風牽
봉래산 신선을 그대는 말하지 말라 蓬萊仙子君休說
맑은 풍경 속 인간세상 내가 신선일세 淸景人間我是仙
이는 조시일(趙時一,1606-?)의 시다. 그의 자는 자건(子健), 호는 준회(遵晦), 본관은 옥천(玉川,순창)이다. 1633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순천부사 귀암(龜巖) 이정(李楨)이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추모하는 유림의 요청에 의해 1565년 옥천정사(玉川精舍)를 지었고, 옥천정사는 1568년 사액(賜額)되면서 옥천서원(玉川書院)으로 바뀌었다. 조시일은 1653년 이율(李嵂) 등과 옥천서원을 중수하였다.
조시일은 방주(芳洲), 즉 봄꽃들 만발하고 버들개지 흩날리는 저물녘 동천에서 빈객들과 뱃놀이를 하였는데, 그 유흥을 아득히 무하향(無何鄕)에서 노니는 듯하다고 하였다. 무하향은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준말인데,『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지금 그대가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쓸모없다고 걱정하면서, 어찌 아무것도 없는 곳의 광막한 들판에 심어 두고서 하릴없이 그 곁을 서성이거나 그 밑에 누워서 소요해 볼 생각은 하지 않는가?[今子有大樹, 患其無用,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 彷徨乎無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라고 한 데서 나왔다. 곧 무하향은 유무(有無)・시비(是非) 등 세속의 대립적이고 번다함이 사라진 허무자연의 세계를 뜻하는데, 환선정과 연관해 보면 선경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므로 조시일의 선유는 빈객들과 더불어 선계에서 노니는 듯한 흥취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이상 4편의 시에서 보듯, 혼자 혹은 지인들과의 선유는 ‘적벽선유(赤壁船遊)’나 ‘적선선유(謫仙船遊)’처럼 고인의 선유를 재현해 보거나 정취를 모방하기도 하고, 자아를 성찰하기도 하고, 선계를 노니는 듯한 흥취를 표출하는 등 정신적 교감의 유흥을 맛보는 데 초점이 있다.
이상의 내용은 김현진(金炫鎭), 「순천지역 누정 제영시 연구」(2018), 경상대학교 박사학위논문을 참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