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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역사인문지리(6) 환선정(喚仙亭) 기문(記文)을 통한 동천의 변화 과정
  • 2021-01-1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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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순천도큐멘타 2020   동천 역사인문지리 조사

06


환선정(喚仙亭) 기문(記文)을 통한 동천의 변화 과정



자료조사 및 정리 : (사)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환선정(喚仙亭)은 순천부읍성 동문 밖 100보쯤 떨어진 동천 가에 지어진 누정으로, 1544년 순천부사 심통원(沈通源)이 완공하였다. 환선정의 건립 내력과 명칭 유래, 수리 이력 등을 기록한 기문(記文) 및 환선정을 읊은 한시는 모두 동천을 언급한다. 그 중 환선정 기문(記文)에 나타난 동천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1544년 당시 읍성 인근 동천의 모양은 알 수 없으나, 뱃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순천부사 심통원은 1544년 환선정 완공을 기념하여 전라도 관찰사 송인수(宋麟壽)와 옥과 현감 김인후(金麟厚)를 초대해 주연을 베풀었다. 당시 송인수가 지은 「제환선정(題喚仙亭)」 시에 뱃놀이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1600년대 초기의 동천 모습은 전라감사 이경전(李慶全,1567-1644)의 「환선정기(喚仙亭記)」를 통해 알 수 있다. 용이 꼬리를 흔들 듯 굽이지며 남쪽으로 흘러 용두포(龍頭浦)[현 해룡면 앵무산 아래]로 갔다. 동천 가에는 푸른 이끼 펼쳐진 백사장이 있었는데, 말타고 활쏘며 무예 사열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긴 무지개다리가 있었고, 시내에는 작은 놀잇배에 속하는 화선(畫船)이 있었다. 이 화선에 대해서는 순천부사로 1616년 음력 10월부터 1619년 음력3월까지 재직한 이수광(李睟光)이 「제화산팔수(題畫船八首)」를 남겼다. 동천 주변의 매화나 대나무가 물에 비쳤고, 남쪽으로 흐르는 양쪽 들판은 벼가 심어졌으며, 동천의 달밤 풍광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1790년대 동천의 모습은 순천부사 윤광안(尹光顏)의 「환선정중수기(喚仙亭重修記)」를 통해 알 수 있다. 동천의 다른 이름으로 광진(廣津)을 말하고 있고, 옥천과 합류하는 동천을 옷깃처럼 교차한다고 표현한다. 동천이 현 삼산, 즉 원산(圓山)을 끼고 흐른다고 점을 언급한다. 또 현 죽도봉, 즉 죽도(竹島)에 대해 작고 둥근 언덕으로 되어 있고 고르게 곧은 푸른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불상의 머리 모양 또는 고둥 껍데기의 나선형 같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 시기의 동천은 환선정 아래에서 고리모양 형상을 한 맑고 평평한 못이었다. 그리고 동천 주변에는 회화나무ㆍ녹나무ㆍ동백나무ㆍ백일홍 등이 심어졌다. 또 환선정 앞으로 동천에는 돌다리의 큰 길이 있으며, 화려하게 치장한 배를 띄워 뱃놀이를 하였다. 동천 가 백사장은 여전히 무예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1870년대 동천의 모습은 순천부사 성이호(成彛鎬,1817-?)의 「환선정중건상량문(喚仙亭重建上樑文)」을 통해 알 수 있다. 동천은 순천부읍성 동문 기준으로 적어도 100보 떨어져 있다는 것과 동천을 주변 백사장 때문에 모래시내[沙溪]라고 불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천은 상선과 세곡선이 이동통로였다. 한편 동천이 1870년 이전에 수해로 물길이 바뀌었는데, 이 시기에 옛 물길을 찾고 해자못[濠池]을 파서 예전의 고리모양의 못 형상을 회복하였다. 이 상량문에 언급은 없으나, 성이호는 1871년 동천 가운데에 우선정(遇仙亭)도 건립하였다. 이는 1872년 제작된 순천부전도[서울대 규장각본, 영남대 박물관본]에 나타나 있다.

 


 


 

 

1. 1613년~1614년 동천의 모습

 

이경전(李慶全,1567-1644)은 전라감사로 1613년~1614년까지 재직하였다. 당시 환선정에 머무른 그는 「환선정기(喚仙亭記)」를 지었다. 그중 동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계산(曹溪山)은 서쪽에 뻗어있고, 바다는 남쪽에 펼쳐져 있다. 교외에는 큰 시내[동천(東川)]가 있어 굽이치며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마치 용이 꼬리를 흔드는 듯이 흘러간다. 동천 가에는 백사장이 있는데 푸른 이끼가 비단 같이 펼쳐졌다. 때때로 말타고 활쏘며 무예를 사열하는 장소가 되니, 이는 하나의 관청에 없을 수 없는데 하늘이 만들어 준 것에 가깝다.

긴 무지개다리에 물결 잔잔하고, 작은 배는 그림 같으며, 매화와 대나무가 은근히 비치고, 잡풀들 무성하고, 누렇게 익은 벼는 들판을 덮었다. 아름다운 산봉우리는 하늘 높이 솟아, 아침저녁으로 빛나고 그늘지며, 비 오고 눈 내리고 바람 불고 단풍 들며 사계절의 경치가 같지 않지만 흥취는 또한 무궁하다. 원산(圓山)[현 삼산(三山)] 봉우리와 계족산(계족산)이 가까이와 멀리에 늘어서 있다. 사도(蛇島)[1872년 지방지도에 의거하면 사도(沙島)]와 용두포(龍頭浦)는 점점이 가로로 늘어섰다.

시냇물[현 옥천(玉川)]은 건달산(建達山)[인제산(麟蹄山)]과 난봉산(鸞鳳山) 사이에서 흘러나와 옥계(玉溪)와 임청대(臨淸臺)가 되었으니,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의 풍도를 우러르고 선생의 학문과 지향을 조문한 것이다. 산은 지리산(智異山) 골짜기를 이어서 쌍계(雙溪)와 석문(石門)의 승경에 대비 되니,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자취를 추념하여 찾을 만하다. 환선정에 올라 한 번 읊조리고 사방을 둘러보면 또한 조금 우울하고 숙연함이 있겠지만 마음에 시원함을 잇게 될 것이다. (중략)

내가 생각건대, 강 하늘에 밤 깊어 만물의 소리가 모두 고요해지고, 물결과 파도가 금빛으로 일렁이고 달빛이 빛나며, 물빛과 산빛이 만리에 걸쳐 대낮 같으면 문을 열어 보거나 기둥에 기대 바라보기도 하고, 배회하며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하여 기다리는 바가 있는 듯할 것이다. 혹 옥피리 소리가 나서 황학(黃鶴)이 날개옷을 입고 너울너울 춤추고 끼룩끼룩 울면서 난간을 스쳐 지나간다면 훗날 이를 서로 보고서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이며, 내가 신선을 부른 것인지 신선이 나를 부른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이는 환선정에서 하루 묵는 밤에 이 정자를 지은 사람과 더불어 질정한 것이다. 마침내 설을 지어 준다.

 

◯ 許永 編, 『新增昇平誌幷續誌』 新增昇平誌下, 李慶全 撰, 「喚仙亭記」

 

曹溪經其西 滄溟亘其南 郊有大川 踠蜒南下 如龍掉尾而逝 川邊有場 綠苔如錦 爲有時馳射閱武之地 是一府之不可無 而殆天所作也 長虹臥波 小艇如畵 梅竹隱映 雜卉成林 黃雲蔽野 玉峰擎天 暉陰朝夕 雨雪風霜 四時之景不同 而趣亦無窮焉 圓峯雞足 近遠羅列 蛇島龍頭 點列橫遮 水出乾達鸞鳳 爲玉溪臨淸之臺 則景仰金先生之風而吊其齋志 山連智異洞壑 指雙溪石門之勝 則緬懷崔孤雲之迹而庶幾可尋 登臨一嘯 周覽四顧 亦少有悄然肅然 而繼以慨然於心者矣 (중략) 吾想夫江天夜深 萬籟俱寂 流波掣金 桂影揚輝 水色山光 萬里如晝 或開戶而視之 倚柱而望之 徘徊俯仰 若有所俟 而倘有玉簫 黃鶴羽衣 蹁躚戞然 掠軒欄而過者 則後此相看 孰主孰賓 而未知我喚仙乎 仙喚我乎 此則當於一宿亭中之夜 與作是亭者質焉 遂爲說而歸之

 

 

2. 1790년대 동천의 모습

 

윤광안(尹光顏)은 부모봉양을 청하여 1790년 2월 6일 순천부사에 제수되었다. 그가 지은 「환선정중수기(喚仙亭重修記)」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승평(昇平 : 순천)의 치소 동쪽에 있는 정자를 환선정(喚仙亭)이라 한다. 순천부에는 2개의 시내가 있는데, 동쪽은 광진(廣津)[동천(東川)을 지칭함]이고 서쪽은 옥천(玉川)이다. 읍성 좌우를 둘러 흐르는데, 환선정 앞에서 옷깃처럼 교차한다. 그 북쪽에 원산(圓山)[현 三山)이 있는데, 세 봉우리가 병풍처럼 나열했고 산자락 동쪽이 비스듬하며 동천을 끼고 있다. 그리고 남쪽에는 하나의 작고 둥근 언덕이 만들어져 고르게 곧고 좋은 대나무가 푸른 빛을 띠고 있어 불상의 머리 모양 또는 고둥 껍데기의 나선형처럼 생겼는데, 죽도(竹島)[현 竹島峰]라고 한다.

동천이 산기슭을 따라 흐르다 환선정의 한쪽 면을 고리모양으로 둘렀는데, 정자 난간 앞에 이르러 맑고 평평한 못[塘]이 되어 헤엄치는 물고기를 허리 굽혀 셀 수 있었다. 정자 양쪽에는 돌을 쌓아 둑을 만들고 긴 숲과 아름다운 화초를 심었는데, 모두 회화나무ㆍ녹나무ㆍ동백나무ㆍ백일홍 등이었다. 정자 앞에는 돌다리의 큰 길이 있고, 그 중간에 화려하게 장식한 배를 띄우거나 물결따라 내려갈 수 있었다. 정자 남쪽에는 사장(射場)이 있는데, 말달리고 활쏘기에 합당하였다. 그 서쪽에는 민가들이 에워싸고 농로가 교차하며 뽕나무와 삼이 우거져 있다. 정자에서 배회하며 사방을 바라보니 탁 트이고 선명하며 농담(濃淡)이 각기 알맞아, 유려함과 통창함 둘 다 이른 것이 대체로 이와 같다. 그 나머지는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 공의 「환선정십영(喚仙亭十詠)」 시에서 징험할 수 있다.

 

◯ 許永 撰, 『新增昇平誌幷續誌』 新增昇平誌下, 尹光顏 撰, 「喚仙亭重修記」

 

亭于昇平府治之東 曰喚仙 府有二溪 東爲廣津 西爲玉川 左右環帶 交襟于亭之前 其北有圓山三峯屛列 餘麓東迤挾溪 而南爲一小圓阜 勻停端好筠簬 被之翠色 如佛頭螺髫者 曰竹島 水循山趾 圜亭一面玦 至檻前 澄平爲塘 游鱗可俯數也 兩旁壘石爲堤 夾以脩林嘉卉 皆槐楠山茶百日紅之類 前有石橋官路 是由中有畫舫可泛可沿 南有射場 宜馳馬躬侯 其西則繚以邑屋 錯以塍陌 翳以桑麻 徘徊四眺 曠然窃然 濃淡各宜 流敞兩臻 大約如斯 其後有芝峯李公睟光十詠詩 可徵也



3. 1870년대 동천의 모습

 

성이호(成彛鎬,1817-?)는 1869년 순천부사에 제수되었다. 1870년 윤10월 환선정을 중수하면서 지은 「환선정중건상량문(喚仙亭重建上樑文)」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1869년 가을 다시 부사(府使)의 명을 받아 이곳 순천에 부사로 왔다. 서울에서 부임지로 내려오는 길에, 길이 환선정을 경유하였다. 환선정은 순천읍성 동쪽 큰 시냇가에 있는데, 읍성으로부터 백여 보 떨어져 있다. 층층 추녀와 단청한 마룻대가 크고 높으며 날아오를 듯하였다. 인제산(麟蹄山)과 난봉산(鸞鳳山)이 아득하고, 중간에는 옥천(玉川)과 모래시내[沙溪, 곧 동천과 백사장]가 좌우에 서로 이어져 있으며, 즐비한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널게 펼쳐진 들판이 평평하다. 나무의 경우에는 귤과 유자로 겨울에도 푸르며, 고을의 자원으로는 물고기와 소금과 벼와 기장이었다. 상선과 세곡선이 안개와 파도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였다. 평소 우리나라의 소강남(小江南)이라 일컬어지니, 이곳 순천에 이 환선정이 있음이 마땅하도다. 이 정자가 신선[仙]으로 이름한 것은 산이 방장산(方丈山, 지리산)을 이웃하고 바다가 영주(瀛洲, 한라산[영주산])를 접하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이 정자에서 신선을 만나기를 바라서일 것이다. (중략)

정자 아래 큰 시내[동천]은 중년에 제방이 터져 옛날의 물길이 지금 풀밭이 되었다. 환선정이 이때부터 무색해지니, 고을 사람들이 탄식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에 옛 물길을 찾아 변해버린 풀밭 여러 구역 땅에 새로 해자못[濠池]을 파니 수면이 솟았다. 이층의 대 위에 삿갓 모양의 조그만 정자를 짓고 정자 아래 조그만 배를 띄우니, 은연하여 마치 소식(蘇軾)이 여음(汝陰)에 유막(帷幕)만으로 지은 택승정(擇勝亭)이나 태을진인(太乙眞人)을 제사지낼 때 쓰는 연꽃으로 만든 배[연주(蓮舟)] 같았다. 안개와 구름, 대나무, 피라미, 모래톱 물새가 모두 즐겁고 기쁜 얼굴로 와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 許永 編, 『新增昇平誌幷續誌』, 成彛鎬 撰, 「喚仙亭重建上樑文」

 

己巳秋 更承分憂之命 出守玆土 下車之路 路由玆亭 亭在城之東大川上 距府治爲百餘武 層軒畵棟 宏敞飛騰 麟岑鳳峀縹渺 中間玉川沙溪 映帶左右 俯瞰閭井之櫛比 平挹原野之廣衍 其木則橘柚冬靑 其利則魚鹽稻黍 商帆米舶 出沒隱現於烟波之中 素稱吾東之小江南 宜其玆土之有玆亭 而亭以仙名者 以其山隣方丈 海接瀛洲 庶幾朝暮遇神仙於此間歟 (중략) 亭下大川 中年橫潰 昔之水道 今爲草場 仙亭自此無色 邑人莫不咨嗟 乃尋其舊址 新鑿濠池于桑田數局之地 水面凸起 二層臺上 構一笠 亭下泛一葉船 隱然若東坡之擇勝太乙之蓮舟 烟雲竹樹 濠魚沙鳥 擧熙熙然 來供耳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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